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뉴스

부친 유죄 뒤집을 증거 없었다…숙명여고 쌍둥이 집행유예 3년

드루와 0
서울 서초구 숙명여고[연합뉴스]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이미 확정된 형사 판결이 인정한 사실은 유력한 증거 자료가 되므로, 이런 사실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와 배치되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다”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인 현모씨와 공모해 정기고사 시험을 치렀단 의심을 받은 쌍둥이 딸들은 지난 3월 확정된 아버지의 판결을 넘지 못했다. 아버지 현씨는 교무부장 재직 당시 관리하던 시험 답안을 유출해 이를 딸들에게 건네고, 딸들은 이를 외워 1년간 5차례의 정기고사 시험을 쳤다는 의혹을 받았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판사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 현모양의 1심을 선고하며 이런 법리에 따라 심리했다고 밝혔다. 송 부장판사는 “아버지 판결에서 확정된 사실관계가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겠다”며 40여분간 선고를 이어갔다. 피고인석에 선 쌍둥이 딸은 선고 내내 재판부를 응시했다. 재판부는 딸들에게 각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아버지 재판에서는 어떤 사실이 인정 됐나

재판부는 아버지 현씨의 1ㆍ2ㆍ3심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를 크게 5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쌍둥이의 내신 시험 성적이 이례적으로 급상승한 점 ▶모의고사와 정기고사 성적 차이가 커 쌍둥이가 진정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답안 유출을 의심할만한 쌍둥이의 행동들 ▶아버지 현씨가 출제 서류에 접근할 수 있었고 시험 전후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 있었던 점 ▶쌍둥이가 다른 경로로 답안을 입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아버지 현씨의 재판에서는 이런여러 가지 간접사실들을 종합해 직접 증거는 없었지만 현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성적 분석: 이례적 성적 상승ㆍ모의고사와의 차이

[그래픽=최종윤]

 

 

재판부는 인정된 간접 사실 각각에 대해 특별히 인정하지 못할만한 사정이 있는지 다시 따졌다. 급격한 성적 상승과 관련해서는 서울 소재 10여개 여자고등학교의 3년간 재학생들의 성적상승 조회 결과와 숙명여고의 수학 석차 성적 조회 자료가 근거로 쓰였다. 재판부는 “쌍둥이와 비슷한 또래 여학생 중 1년 내 성적이 급상승한 사례는 분명히 존재하긴 한다”고 사실조회 결과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통상 흔하게 발견되는 사례는 아니고 이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아버지 재판에서 인정된 사실이 틀리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통상적으로 중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의 성적 상승보다 중상위권에서 최상위권으로의 상승이 더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딸이 1학년 1학기 중상위권 성적에서 1년 만에 인문ㆍ자연계열 전체 1등까지 성적을 올린 점은 사실조회에 나온 이례적 사례보다 더 이례적인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신 시험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의 차이 역시 아버지 판결의 인정된 부분을 넘을만한 정황이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모의고사가 실제 입시에 반영되지 않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내신 성적이 최상위라면 모의고사도 비례해 성적을 얻는 것이 일반적인데, 딸들의 교내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은 지나치게 차이가 크게 난다”고 인정했다.
 

의심스러운 행적: 깨알 정답, 휴대폰에 적힌 답 등
 
서울 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쌍둥이 문제유출 사건의 압수품인 시험지에 해당 시험 문제의 정답(빨간 원)이 적혀있다.[뉴스1]
 
 

‘딸들의 의심스러운 행적’은 6개의 사례로 나눠 판단했다. 시험지 여백에 적혀 있는 이른바 ‘깨알정답’이나 시험 일자 며칠 전에 휴대전화에 미리 저장된 영어 구문 답안 등에 대한 판단이다. 깨알정답에 대해 딸들은 “반장이 불러준 답을 적었거나 정답 분포를 알기 위해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딸들이 시험 전에 알게 된 답을 외웠다가 시험지에 적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봤다.


 

서울 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쌍둥이 문제유출 사건 압수품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출 정황. [사진 수서경찰서]
 
 

시험 3일 전 휴대폰 암기장에 적힌 영어 구문에 대한 판단도 그대로 인정됐다. 쌍둥이 동생은 2018년 6월 기말고사 영어 시험에서 서술형 9번 정답을 주어가 생략된 형태로 휴대전화 메모장에 저장했다. 현양은 이를 인터넷 심화학습 때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출제교사는 “500개가 넘는 문장 중 1개이고, 중요 문장으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 문장을 꼽아 유형을 알고 답을 저장한 것은 출제자로서 매우 충격적이다”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동생은 시험 전부터 답을 알았고, 이를 외우려고 휴대폰에 저장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숙명여고 쌍둥이의 메모장에서 발견된 '전 과목 정답' 메모 [연합뉴스]
 
 

쌍둥이 집에서 발견된 답이 적힌 수기메모장과 포스트잇, 유달리 쌍둥이들만 답안지에 정정 전 정답을 쓴 점 등에 대한 판단 역시 그대로 인정됐다. 풀이과정 없이 물리나 수학 문제를 맞힌 점에 대해서는 재판부는 “풀이과정을 잘못 적어놓고 정답은 맞게 쓴 기묘한 상황을 보면 답안을 미리 알았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라고 판단했다.

아버지 현씨가 시험 전 주말 특별한 이유 없이 초과근무를 했다는 등의 의심스러운 행적에 대해서 재판부는 “현씨 재판에서 직접 심리를 했고, 딸들 재판에서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현씨 재판을 뒤집을 사정이 없다”고 했다. 결국 이런 사정을 모두 모아볼 때 재판부는 “딸들이 아버지와 공모해 위계로 숙명여자고등학교의 학업성적 관리 방해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된 답, 거부 못한다" 주장했지만

변호인들은 지난 이달 초 재판부에 입시 비리와 관련된 한 대법원 판례를 제출했다고 한다. 1966년에 나온 판례인데, 시험 응시자가 우연히 시험문제를 알게 돼 답을 외운 뒤 시험을 친 경우 이를 업무방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부정한 방법으로 안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시험문제와 정답을 알았을 때, 그 답을 적지 않을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우연히 알게 된 답을 시험지에 적지 않을 ‘기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과 사안이 달라 적용하기 어렵다"면서도 "사건에 맞춰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더라도 쌍둥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적법한 행위로 나가는 게 전혀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어 재판부는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험에 업무방해로 학생들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박탈하고, 공교육에 대한 다수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며 쌍둥이들의 죄질이 무겁지 않다고 판결했다. 또 법정에서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점도 짚었다. 다만 딸들이 사건 당시는 물론 지금도 미성년자여서 인격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봤다. 이 사건으로 퇴학 처분을 받은 점도 고려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이수정 기자 

, , , , , , , , , , , , , , , , ,

0 Comments
번호 제목
Category